월드 스토리/미국

밴터빌트와 JP 모건

Koriweb 2013. 3. 26.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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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터빌트와 JP 모건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좌)와 J.P. 모건>

굴드나 밴터빌트 같은 귀족들이 볼 때 철도는 거대한 부로 가는 티켓이었다.

코넬리우스 밴더빌트(1794-1877)는 스태튼 섬의 연락선 도항업을 시작으로 증기선 제국을 이루고 남북전쟁 뒤에는 철도업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해 간 인물이다.


그는 부당 이득과 뇌물을 통해 뉴욕 센트럴 철도를 미국 최대의 단선철도로 건설했다. 또한 거대한 유산을 가족들에게 남겨주었고 그 유산을 물려받은 가족은 손님들이 보석통을 찾아다닐 정도로 호화판 파티를 열었다.


제이 굴드(1836-1892)는 밴더빌트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 중의 하나였다. 그는 뉴욕의 이리(Erie) 철도권을 따내 사업을 시작했으나 주식의 과다 증발이 들통나 물러나야만 했다. 그 방법이 너무도 노골적이어서 당시와 같이 ‘마음대로 해라’시대의 공직자까지 끼여들어 문제를 해결할 정도였다.

굴드는 남서부의 작은 철도권들을 따내 그것을 지역독점사로 통합하여 거대제국을 건설했다.


1869년 굴드와 제임스 피스크는 순진한 그랜트 대통령을 이용하여 금 시장을 조작하려 했다. 당시만 해도 금 시장은 연방정부가 아닌 뉴욕증권거래소 골드룸의 거래원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그랜트 대통령은 그들의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한동안 금 매각을 중지시켜 가격상승을 유도했다. 그러다 마침내 낌새를 알채채고 400만 달러의 금을 방출시켜 1869년 9월 24일 ‘검은 금요일(Black Friday)’에 금 가격을 끌어내렸다. 그 결과 주식시장은 붕괴했고 이것은 앞으로 수년간 이어지는 경제불황의 시초가 되었다.


철도권 속속들이 밴 부패와 독점, 그리고 공포의 ‘검은 금요일’이 만들어낸 경제불황으로 철도업은 곪아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1890년대에 이르자 과다 경쟁과 허약한 경제여건으로 수많은 철도사들이 거의 파산상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때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J.P. 모건 시니어(1837~19193)였다.

런던에 본거지를 둔 미국 금융가의 아들 피어폰트 모건은 남북전쟁 참전을 회피한 것은 물론 그 전쟁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인물이다. 그는 자금을 조달하여 구식 카빈총을 한 정에 3달러 50센트에 사들인 뒤 또 다른 사람에게 자금을 대주어 그것을 다시 11달러 50센트에 사들이도록 했다.

그 총은 최신식으로 개조되어 한 정에 22달러에 되팔렸다. 그로부터 13개월 뒤 정부는 개조된 구식 총을 원래 가격의 6배를 주고 사들였으며 그 모든 거래에서 자금을 조달한 사람은 모건이었다.


20세기 초가 되자 미국에서 모건의 손길이 뻗치지 않은 금융업계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의 은행은 다른 은행들에 돈을 빌려주는 이른바 백만장자들의 클럽이었다. 모건은 또 자기 손을 통해 소수의 사람들이 미국 철도 지배권을 갖도록 하여 1900년까지는 미국 철도의 절반을 차지했다. 나머지 소유권도 거의 그의 친구들이 차지하여 전국의 철도요금을 좌지우지했다.


1900년 모건과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가 어떤 파티장에서 조우했다. 카네기가 숫자를 하나 끄적거리자 모건이 동의했다. 최초의 억만달러 기업 US 스틸(United States Steel Corporation)은 그렇게 탄생했다.


*출처: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케네스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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