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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스토리/미국

제1차 세계대전의 대가는?



제1차 세계대전의 대가는?



<1차 세계대전 참전국들이 1919년 베르사이유 조약을 체결하는 장면>

‘모든 전쟁의 종식을 위한 전쟁’의 대가는 너무도 참혹했다. 줄잡아 1천만명의 사람들이 유럽의 전쟁터에서 죽어갔다. 청년의 전 세대가 러시아와 프랑스에서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것이다.

러시아에서의 전사자만도 170만 명에 이르렀고 이 중 프랑스군이 135만 7천명, 영국군이 90만 8천명이었다. 동맹국측 전사자는 독일군 180만명, 오스트리아군 120만명, 터키군 32만 5천명이었다.

단기가의 개입이었지만 미국도 13만 174명의 전사자와 20만명 이상의 부상자를 냈다.

이런 피해를 입은 연합국측으로는 당연히 용서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때문에 베르사이유 조약도 전쟁 발발의 책임은 모든 나라에 다 있는데도 전비는 독일측에만 떠넘기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독일, 오스트리아, 터키 동맹국 측이 감당하기에는 전비의 규모가 너무 컸다.

전비보다 몇 배나 더 위험했던 것이 세계 지도의 재편이었다. 한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해 있던 헝가리의 경우 영토의 2/3를 잃은데다 인구까지 800만으로 줄어들었다. 옛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독일 영토를 제멋대로 분할한 결과 발틱 해를 통로로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라바키아, 폴란드와 같은 독립국들도 새로 생겨났다.

그로인해 약 300만 명의 오스트리아계 독일인들이 체코슬라바키아로 편입되었다. 그들이 이른바 수데텐란트의 독일인들이고 이곳은 몇 년 뒤 재건을 이룬 독일이 수데텐란트의 병합을 결정하면서 더욱 중요한 지역으로 떠오르게 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나머지 반쪽은 형편없이 쪼그라든 오스트리아가 되었다. 이 또한 1939년에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오스만터키에 속해 있던 중동 지역 영토는 승전국들이 죄다 나눠갖고 터키는 허약한 소국으로 남겨졌다. 영국은 팔레스타인, 요르단, 그리고 석유매장량이 풍부한 메소포타미아(현재의 이라크)를 차지했다. 레바논과 시리아는 프랑스에 넘어갔다.

당시 파리에는 베트남인 유학생이 한 명 머물고 있었다. 그가 베트남의 독립국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자 프랑스는 머뭇거렸다. 그러자 후일 알려진 대로 호치민은 모스크바로 가서 혁명기술을 익혔고 훗날 그 기술을 이용하여 프랑스군과 미군으로부터 베트남을 되찾았다.

독일 소유로 되어 있던 아프리카 지역도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령’ 아래 승전국들에게 분할되었다. 하지만 이 분할은 독일이 갖고 있던 아프리카 영토의 지배권을 새로운 식민지 국가들에게 넘겨준 것에 불과했다.

중동, 아프리카, 동유럽, 인도차이나에서의 터무니없는 분할을 비롯하여 이 모든 전후 거래에서 이미 제2차 세계대전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출처: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케네스 데이비스)

2013-06-27 11:5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