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포드대 설립자 릴런드 스탠포드>
19세기야말로 전례없이 거대한 부와 힘을 축적, 보유한 민간인 천재가 정치적 천재의 기세를 꺽은 시대였다.
19세기에 위세를 누린 대표적인 인물은 미국 정부의 대부 요청을 거절한 J.P. 모건 시니어였다.
담보 물건이 부족하다는 것이 거절 이유였다. 1895년 모건은 금과 국채를 교환하는 형식으로 거의 파산 직전에 이른 연방정부를 구해주었다. 그런 다음 즉시 국채를 되팔아 엄청난 차액을 남겼다.
미국의 부가 소수의 손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식민지 시대부터 계속돼온 일이다. 하지만 부의 집중 현상이 가장 심화된 양상을 보인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 서부는 영토를 활짝 개방하고 인디언들도 다 쫓아내고 밀려들 군중을 맞을 채비를 했다.
준비를 마치고 나니 이 풍요로운 땅에 도달하기 위한 – 금, 은, 동 채굴 연장을 제조하는 공장 노동자들을 먹이기 위해 동부 시장에 밀과 소를 실어 날라야 했기 때문에- 값싸고 빠른 운송수단이 필요해졌다. 철도 증설에는 땅, 노동, 철강, 자본 네가지 기본 요소가 필요했다.
이 네가지는 이렇게 충족되었다. 땅은 연방 정부, 값싼 노동력은 동부와 서부의 이민자들, 철강은 카네기, 자본은 J.P. 모건 부자(父子)
끝없이 펼쳐진 서부의 부에 대륙 횡단 철도 건설안이 수립되자 재무성을 상대로 부정을 저지를 수 있는 기회도 무한정으로 늘어났다. 이런 부정은 1872년에 터진 크레딧모빌리에 스캔들과 함께 만천하에 드러났다.
매사추세츠 주 국회의원 오크스 에임스는 샵 제조업자이자 네브래스카에서 시작되는 서쪽 철도의 부설권을 갖고 있던 유니언퍼시픽철도회사의 이사였다. 에임스과 유니언퍼시픽철도회사는 크레딧모빌리에라는 회사를 차려놓고 건축계약을 모조리 독식했다.
실제로는 4천400만 달러에 불과한 거래를 의회에서 9천400만 달러에 따내기도 했다. 에임스는 뉴욕 주식시장에서 크레딧모빌리에 주식을 시세의 반값으로 팔아 회사 주식을 마구 살포하는 방식으로 이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 ‘내부자 거래’의 득을 본 사람 중에는 미래의 대통령이 될 제임스 A. 가필드와 그랜트 대통령의 초임, 재임시절에 부통령을 지낸 슐러 콜팩스, 헨리 윌슨 같은 의회 지도자들도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 이 두 부통령은 ‘부’(vice)라는 직책에 전혀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릴런드 스탠포드(위 사진) 소유의 샌트럴퍼시픽사도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되는 동쪽 철도를 건설하면서 그와 똑같은 부정을 저질렀다. 무상으로 토지를 불하받았고 계약을 따냈으며 엄청난 폭리를 취했다.
그러고도 무사히 넘어갔으나 결국 스탠포드는 그 돈으로 대학(스탠포드)을 설립했다. 에임스와 뉴욕 주 국회의원 제임스 브룩스는 의회에서 견책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 거래로 대학을 얻지는 못했다. 다른 국회의원들은 무죄로 밝혀졌다.
날강도 귀족(Robber baron)이라는 말은 찰스 프랜시스 애덤스가 ‘철도:기원과 문제들 (Railroads: Their Origin and Problems)(1878)에서 처음 사용했다.
*출처: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케네스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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