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스토리

리틀빅혼 전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Koriweb 2013. 3. 1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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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빅혼 전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청회색 군복을 입은 백인 병사들이 죽도록 싸우고 있을 때 서부에는 30여만 명의 아메리칸 인디언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1812년의 미영 전쟁, 명백한 운명, 캘리포니아와 콜로라도의 골드러시 그리고 인디언들의 사냥터에서 인디언들을 몰아내려고 백인들이 만들어낸 그 밖의 온갖 구실들에 떠밀려 동부와 서부 연안으로부터 안쪽으로 밀려간 사람들이었다.

19세기 초 인디언 제거 기간동안 앤르류 잭슨이 약속한 ‘인디언 영구 정착지’는 인디언의 슬픈 역사에 있었던 모든 조약이 그러하듯, 공기업인과 사기업인들에 의해 깨진 지 이미 오래였다.

그때까지 남아있던 인디언 종족 중 가장 강력하고 숫자가 많은 종족은 수우족이었다. 1866년부터 1891년까지 연방군은 상당한 병력과 비용을 지불하면서 인디언 부족과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마지막 공격은 수우족이 보즈먼 트레일을 열지 않으려 한 것이 발단이되어 일어났다.

이 트레일은 몬태나 주의 인디언 영토를 통해 캘리포니아의 금광지대로 이어진 길이었다. 수우족은 레드 클라우드의 지휘 하래 연방군을 공격하여 연방군이 보즈먼 트레일 변에 세우고 있던 요새들을 파괴했다. 1867년의 조약으로 이 싸움은 이 정도에서 끝이 났다. 하지만 이번에도 평화의 꿈을 깬 것은 역시 금이었다.

사우스다코타 주 블랙힐스에 위치한 인디언 보호구역을 무단으로 침입한 자들은 커스터와 그 일파였다. 그리고 그 지역으로의 골드러시가 이어졌다. 인디언들은 그 땅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떠나지 않고 싸우기로 결심했다.

수우족은 샤이안족과 합세하여 몬태나 남부의 리틀빅혼 강 유역에 병력을 집결시켰다. 1876년 여름 커스터는 공격을 삼가라는 특별 명령을 어기고 2천에서 4천 명 정도의 인디언들이 그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다는 경고도 무시한 채, 250명의 병력을 이끌고 공격을 감행했다. 인디언들은 커스터 부하들을 남김없이 처치했다.

동부 신문들은 리틀빅혼 전투를 전혀 다른 내용으로 썼다. 건국 100주년 기념행사에 광분해있던 국민들은 그 전투를 피에 굶주린 인디언들이 용감한 병사들에게 저지른 학살로 받아들였다.

국민들과 정치권은 격분하여 수우족에 대한 전면전을 요구했다. 군대의 반응은 더 한층 맹렬하여 연방군은 인디언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군대의 절반을 그쪽으로 파견했다. 그들은 남아있던 수우족을 일망타진하고 막사를 걷어치운 다믐 인디언 구역으로 그들을 강제 퇴거시켰다.

수우족과의 전쟁 뒤에는 북서부의 네즈퍼스족 추장 조지프와 남서부의 제로니모 추장 그리고 제로니모가 거느린 아파치족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 작전이 벌어졌다. 사나운 추장 제로니모는 1886년에 붙잡혀 세인트루이스 세계박람회에 전시되었다.

 

*출처: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케네스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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