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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의 시대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북부 박애주의자들은 장차 남부의 대표적인 대학이 될 학교들을 설립하거나 부흥시켰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이 정치력(제한적이지만)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율리시즈는 선거에서 흑인들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실제로 그들 모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흑인 표의 막강한 영향력을 간파한 공화당 의원들은 투표 요건에서 인종성을 제거하는 수정헌법 15조를 제정하여 흑인들에게 서둘러 선거권을 부여했다.
노예제에서 풀려나 시민권을 획득한 지 불과 몇년 만에 흑인이 어떤 식으로든 정치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혁명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성과 이면에는 그 시대의 산물인 권력의 부패와 그로 인해 생겨난 백인들의 반발이 있었다. 새롭게 자유를 얻는 흑인들은 거의 대부분 교육받지 못한 문맹이었기 때문에 헌법 정치의 복잡함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백인들에게 이용당하기 십상이었다.
백인들의 일부는 북부에서 건너온 자들이었고 카펫 원료로 만든 부드러운 카펫백에 소지품을 넣고 다녔기 때문에 카펫배거(carpetbagger)라고도 불렸다.
전통적으로 카펫배거는 흑인 표를 이용하여 권력을 잡아보려는 협잡꾼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목화 밀매로 돈을 벌어 후일 상원의원이 된 북부인 조지 스펜서도 카펫배거였다. 하지만 역사가 에릭 포너는 그 시대를 다룬 묵직한 저서 <재건(Reconstruction)>에서 카펫배거가 협잡꾼이었다는 일반인들의 인식을 일축하고 있다. 포너의 논점은 이들 북부 카펫배거들은 대부분 하층민이 아닌 중산층 전문 직업인이었다는 것이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 서부로 건너간 사람들처럼 이들도 남부를 개인적인 발전과 기회의 수단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이들 카펫배거들 중에는 흑인들이 투표권을 갖기도 전에 남부로 옮겨 간 이상주의자도 상당히 있었다는 것이 포너의 주장이다.
남부 출신의 백인 공화당원을 일컫는 ‘스캘러와그’(scalawag)도 카펫배거 못지 않게 악명을 떨친 부류이다. 이들은 종교와 지역 모두를 배신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남부 민주당원들로부터 카펫배거보다 더 미움을 샀다.
포너는 이들에 대해서도 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일자무식의 흑인들을 착취하여 부당이득을 챙긴, 즉 부패한 정치가라는 이들에 대한 기존 관념은 정치 현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전후의 적개심을 반영한 것이라는 말이었다.
*출처: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케네스 데이비스)
2013-02-19 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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