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스토리

운디드니에서 벌어진 일은?

Koriweb 2013. 3. 1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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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춤을 추는 인디언들을 그린 그림>

 

리틀빅혼 전투는 인디언들이 어차피 맞았어야 하는 결과를 앞당긴 값비싼 승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어 벌어진 연방군과의 전투는 모두 참담한 패배로 끝이 났다.

인디언 추장들은 하나둘씩 붙잡히거나 살해되었고 살아남은 부족은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강제추방당했다. 하지만 승산이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일부 인디언들은 항복을 거부했다. 그것이 결국 19세기 최후의 저항운동과 학살로 이어졌고 인디언 전쟁을 종결짓는 상징이 되었다.

1888년 우보카라는 이름의 파이우트족 인디언이 ‘유령의 춤’(Ghost Dance)’이라는 일종의 종교운동을 일으켰다. 이 운동의 신도들은 세상에 곧 종말이 닥칠 것이고 그렇게 망한 세상은 죽은 인디언을 포함한 인디언들이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우보카는 인디언들의 화합을 역설하면서 백인과 관련된 모든 것, 특히, 술을 배격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유령의 춤이라는 이름은 미래의 인디언 천국이 펼쳐진다는 광란의 춤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종교운동은 대초원 지대, 남서부 지역과 극서부 지역 인디언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그러던 중 두 명의 수우족 주술사가 춤꾼들이 입은 ‘유령 옷’으로 백인의 총알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운동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 말을 듣고 인디언들의 전투 열기가 새롭게 솟구쳤던 것이다.

유령의 춤꾼들에게 깜작 놀란 연방군은 인디언 추장들을 체포하려고 했다. 빅 푸트라는 이름의 또 다른 추장도 연방군의 추격을 받았다. 1890년 크리스마스 사흘 후 부녀자를 포함한 300여명의 빅 푸트 부족은 연방 순찰대에 발각되어 사우스다코타 주 파인리지 보호구역에 있는 운디드니 야영지로 보내졌다.

1890년 12월 29일, 인디언들이 연방군에 무기를 넘기려는 찰나, 블랙 코요테라는 이름의 귀머거리 인디언이 총을 발사했다. 그것이 사고였는지 고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여하튼 병사들은 순간 겁에 질려 무장해제당한 인디언들을 향해 대포화 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최소 150명의 인디언을 비롯해 모두 합쳐 300여명이 집중 포화를 받고 사망했다. 이렇게 해서 운디드니는 인디언들의 ‘마지막 저항지’가 되었다.

이후 20년동안은 말 그대로 ‘아메리칸 인디언’ 역사의 최하점이었다. 1890년에서 1910년 사이 인디언 전체 인구는 25만명도 안될 정도로 급감했다.

하지만 거의 소멸직전에 이르러 아메리칸 인디언은 또 한번 회생력을 보여줬다. 인디언들은 더니나마 조금씩 법적 권리를 얻기 시작했다. 1924년에는 미국 내 모든 토착 인디언들에게 시민권이 주어졌다.

그 법은 주로 제1차 세계대전 때 미국을 위해 싸워준 대다수 인디언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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